특별한 무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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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연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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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무언가 2014. 9. 23. 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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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인 9월 22일, SBS 새 월화드라마 비밀의 문 - 의궤 살인사건이 처음으로 방송되었죠

 

닐슨코리아 시청률 조사에 따르면, 전국 시청률 8.8%로 동시간대 2위를 기록했다고 하네요

 

전작인 드라마 유혹보다 낮은 수치이긴 하나, 그래도 시작부터 2위를 기록한건 좋은 출발이죠

 

1위는 MBC 야경꾼일지 10.3%, 3위는 KBS 연애의발견 6.8%라고 하네요

 

드라마 비밀의문은 강력한 왕권 지향의 영조 vs 백성들을 위한 공평한 세상 주창 세자 이선(사도세자)의

갈등을 그린 궁중 미스터리 장르의 작품이에요

 

이번 드라마가 시작된 이후부터 사람들은 사도세자와 영조 그리고 주변인물들에 대해 큰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죠

(드라마의 좋은 효과 중 하나가 이런게 아닌가 싶은~ 그냥 역사 공부하라고 하면 안하니까)

 

 





 

 

(영조/사도세자 가계도)

 

(죽은 다음에 그려졌다고)

 

(사도세자가 죽음을 맞이한 뒤주)

 

 

 

 

사도세자는 이번 드라마 말고도, 과거에서부터 영화 등에서 많이 다루어진 인물이죠

 

조선 시대 역사에서 어떻게보면 가장 비참하게 죽은 인물이기도...

 

사도세자는 영조 11년인 1735년도에 태어났어요

(영조 38년인 1762년도에 사망)

 

당시 영조의 나이는 42살이었다고 하죠

 

지금에도 늦은 나이인데, 조선시대의 평균 수명을 생각해본다면 상당히 늦은 나이에 얻은 아이였어요(늦둥이)

 

그래서 더욱 귀했다고~

 

본명은 이선이고, 영조의 차남이고, 영빈 이씨의 아들이죠

 

아들은 정조가 있고, 부인은 혜경궁 홍씨에요

 

나중에 정조가 폐서인 신분인 아버지 사도세자를 정헌세자로 추존하죠

 

사도세자라는 명칭에서 사도(思悼)는 시호라고 해요

 

영조가 이선을 뒤주 속에 가둬서 사망하게 만든 후에 후회를 하게 되는데,

이후 세자의 죽음 애도한다는 뜻/의미로 사도라는 시호를 내린 것이죠

 

실제로, 사도세자는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져있는 것처럼 병약한 인물이 아니였다고 해요

 

실록에 따르면, 사도세자는 무예를 익혀서 사냥도 나갈정도로 몸이 건강했다고 하죠

 

사도세자는 공부보다는 잡학 및 무예에만 능한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하는데,

이러한 아들의 행동이 아버지인 영조는 마음에 안들었다고 해요

 

사도세자에게는 의소세손, 정조, 은언군, 은신군, 은전군 등 아들만 5명이었을 정도로

건강적인 면에서는 특별히 이상한 점이 없었다고 하네요

(의소세손은 정조가 태어나기 전에 사망)

 

그런데, 정신적인 부분에서는 문제가 조금 있었다고 해요

 

기록에 따르면, 좁고 어두운 장소에 혼자서만 있으면 엄청 불안한 상태가 된다고 하네요

 

의대증이라는 병, 증상을 보이기도 했다고 하는데, 옷을 입지 못하는 병이라고 해요

 

옷을 한벌 입기전에 귀신이 들린건지 아닌지 확인하기 위하여 불에 태우거나,

똑같은 옷을 수십벌 만들어서 계속해서 갈아입거나,

어렵사리 한번 입은 옷은 일반적인 왕족과 달리 다 닳도록 입었다고 하네요

 

영조실록에 따르면, 외모, 생각, 됨됨이는 효종과 닮았다고 하며, 어렸을 때부터 총명하였고 해요

 

외모가 미인인 어머니 영빈 이씨를 닮아서 미남이었다고 하네요

 

고종실록에 따르면, 얼굴이 무표정이고 엄숙한 모습이어서, 신하들이 영조보다 사도세자를 더욱 두려워했다고 하네요

 

반면, 백성들에게는 자애로웠다고~

 

이러한 사도세자는 영조 38년인 1762년도 윤 5월 13일에 아버지 영조에 의하여 폐서인되고 뒤주에 갇히게 되죠

 

그렇게 뒤주에 갇힌지 8일만에 사도세자는 사망하게 되는데, 이 충격적인 사건을 임오화변이라고 해요

 

28살이었던 젊은 나이에 결국 물 한모금도 못마시고서 비극적으로 죽게된거죠

 

사도세자가 죽은 이유/사유에 대해서 여러가지 말들이 많은데, 정치적인 이유가 크다고 해요

 

사도세자는 위에서도 말한것과 같이 상당히 똑똑하였는데,

이러한 사도세자가 붕당을 만들어 본인들 사리사욕을 채우려고 한 대신들에게는 상당히 큰 걸림돌이었다고 해요

 

대신들은 영조만으로도 힘든데, 아들인 사도세자까지 있으니, 본인들 욕심을 채우기가 어려웠겠죠

 

노비출신의 어머니가 있었던 영조에게는 본인과 다른 출신의 어머니를 가진 아들 사도세자가

여러가지 면에서 상당히 부러웠다고 하네요

 

그래서 열등감을 갖고 있었다고~

 

당시에 영조를 대신하여 사도세자가 대리청정을 한적이 있었는데,

사도세자가 노론이 아닌 소론편으로 차츰 기울자, 노론 측에서 정순왕후와 함께 사도세자를 영조에게 무고하였어요

 

노론들의 모략에 말린 영조는 결국 사도세자를 압박하였고,

주변 인물들과 아버지의 압박에 사도세자는 정신적인 이상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어요

 

이러한 상황 속에서 계속해서 아버지와 아들의 싸움이 진행되었고,

결국에는 영조가 분을 이기지 못하고 사도세자에게 자결을 명하고, 뒤주에 가두게 된거죠

 

허나, 영조는 본인의 행동이 무모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아들을 죽였다는 후회를 안고서 세자의 호를 회복시켰으며, 장례를 치뤄주었어요

 

영조도 문제였긴 하나, 실제로는 노론들때문에 죽었다는 평가가 많이 나오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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