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무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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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무언가 2014. 6. 2.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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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KBS 대하드라마 정도전에서 이성계가 어린 의안군 이방석을 세자에 책봉하였죠
이후, 세자 책봉을 실패한 이방원과 하륜이 만나는 모습이 나왔죠
하륜은 세자 책봉에 실패한 후 동북면으로 물러나게된 이방원을 찾아가죠
하륜은 이방원을 만나서 보위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고,
하륜은 이방원을 왕위에 올리기로 작정하면서 왕자의난을 예고하였어요
<제 1차 조선 왕자의 난>
조선 초, 태종 이방원이 왕자 시절에 일으킨 난이 바로 조선 왕자의난, 1차 왕자의난이죠
1398년 - 무인년에 발생되었다고 하여, 무인정사라고도 하며, 이방원이 주도하였기에 이방원의난이라고도 하죠
조선 왕자의난으로 이방원이 왕이 된건 아니긴 하나, 조선 2대왕 정종이 방원의 등극과정에서 다리 역할을 했기에,
사실상 쿠데타로 보고 있죠
원래는 이성계 맏아들 이방우(진안대군)이 세자가 되는게 가장 문나하였으나,
이방우는 아버지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을 통하여 정권을 잡고서 새로운 왕자를 열 기색을 보이니,
숨어서 지내겠다는 뜻으로 가족을 데리고서 철원 보개산에 들어가서 은거하였죠
조선이 건국된 후에도 국가 일에는 전혀 간여를 하지 않았으며, 태조에게 집과 땅을 하사받은 뒤 고향 - 함흥으로 가서
남은 여생을 지냈다고 해요
이방우가 세자를 안한다고 하면서부터 세자 문제가 생겨나게 된거죠
1392년 8월 20일, 태조 이성계는 정도전, 남은, 조준, 배극렴 등을 불러서 세자 책봉 문제에 대해 논의를 해요
공신들은 처음에는 적장자계승, 공을 갖고 있는 아들 중에서 선택하여 실행하려고 했지만,
태조와 신덕왕후 강씨가 이를 거부했다 하죠
이성계 아들 중에서 조선왕조를 설립하는데 큰 공을 갖고 있는건 둘째 아들 이방, 다섯째 아들 이방원이었죠
이성계는 처음에 이방번(무안대군)을 밀었는데, 공신들이 신덕왕후 소생을 세울꺼면 차라리
막내아들 이방석(의안대군)을 책봉하라 말하자, 그렇게 하였죠
이에 대해, 신의왕후 한씨 소생 이복형들이 불만을 갖게 되었으며, 이후 쿠데타를 일으키는데,
정안대군인 이방원이 주동을 하게 되죠
이방석은 건국에 아무런 공이 없었으며, 다른 형들에 비하여 정통성도 크게 미약하였다고 하죠
당시 이 난은 계유정난과는 다르게 명분이 있었는데, 막내를 몰아내고 적장자를 모시자는 것이었죠
이 명분은 당시 시대상으로는 일리가 있는 말이었으며, 대다수의 사람들이 묵인했다고 하죠
(개국공신 대다수가 성리학을 배운 신진 사대부 출신)
이방원의난으로 정도전, 남은, 심효생(세자빈 아버지), 장지화 등 많은 개국공신들이 사망하였죠
왕궁 치안 담당 박위, 세자 이방석, 형 이방번, 경순공주 남편 이제 등도 살해되었죠
나중에 우의정이 되는 이직은 제거 대상에 올랐으나 종으로 위장해서 살았고, 이무는 스파이여서 살았고,
변중량은 정도전과 같이 있다가 죽음을 당하였다고 하죠
태조 이성계는 회의를 느껴서 퇴위하였다 하지만, 실제로는 압력에 이기지 못하고서 내려왔다 평가되고 있으며,
2대 왕은 정조(이방과)가 되긴 하나, 실세는 이방원이 된거죠
그리고 나중에 3대왕으로 이방원(태종)이 되죠
<제 2차 조선 왕자의 난>
1차 이후에 2차 조선 왕자의난도 있었는데, 이는 이방간(회안대군)이 일으킨 난이에요
회안대군 참모인 박포가 꾀를 부려 회안대군을 현옥시키면서 발생되었다고 하여, 박포의난이라고도 불리우고 있죠
이방간은 이성계의 넷째아들인데, 태종 이방원보다 형이었기에 왕위에 대한 야심을 품었지만,
능력이 별로 특별나지 않았기에 주목을 못받았다고 해요
이런 상황에서, 1차 왕자의난에서 공을 세웠던 박포가, 논공행상에 불만을 갖고서 이야기하다가,
화가난 이방원에 의하여 귀양을 가게 되죠
이 사건으로 분노가 극에 치닫게된 박포가 이방원에게 등을 돌렸고, 이방원을 제거하기 위한 세력을 찾던 도중,
이방간에게 접근하게 된거죠
이방원에게 죽음을 당할 것 같다고 느낀 이방간은 박포의 꾀임에 쉽사리 넘어가게 되었고,
박포는 이방간에게 대책을 물은 뒤 반란을 결심하게 되죠
이후, 사냥을 핑계로 하여 군사를 모은 후 이방원을 공격하였고,
개경 시내에서 이방간 군대 vs 이방원 군대가 배틀을 벌이게 되죠
이 싸움에 대해 정종은
형제를 죽이려고 한다고 미쳤다고 칼을 버리고 대궐로 오면 목숨만 살려준다며 이방간에게 말하였고,
태조(당시에는 태상왕)도 형제들끼리 싸우는 것이 더는 싫어 말렸다고 하죠
태조와 정종이 이방간의 패배를 예측하는 말을 한 뒤로 이방간은 전의를 상당히 상실했다고 해요
실제로 이방원은 의안대군 이화, 이지란, 조영무 등 측근 및 종친들과 논의를 통해,
이방간 움직임을 모두 알고 있었으며, 어떻게 진압을 해야될지 작전회의를 했다고 하죠
이방원은 이번 전투로 되려 이미지가 좋아지게 되었고(이방간은 죽이지 않겠다, 형제들끼리 싸움은 하지 말자 등)
이방간은 큰 힘도 못써보고 참패를 하게 되었다고 하네요
박포는 처형되었고, 이방간은 귀양을 떠나게 되었는데, 편하게 살다가 나중에 늙어서 죽었다고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