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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무언가 2014. 4. 19. 0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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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훼리호 침몰사고는 1993년 10월 10일 아침 10시 20분 쯤,

부안군 위도면을 떠나서 격포항으로 가던 도중에 침몰하여,

총 362명의 탑승객 중에서 292명이 사망한 최악의 해상 참사죠

 

당시에 백운두 선장은 침몰하는 상황 속에서 혼자 탈출하여 근처 섬 또는 뭍으로 도주를 하였다는 의혹을 받았었죠

 

구조 작업에 나선 민간인들 및 생존자 중에서도, 누구도 배에서 백운두 선장을 못봤다는 진술이 나왔으며,

사고 이후에 근처 항구에서 백운두 선장과 비슷한 사람을 보았다는 제보까지 이어져서,

검찰에서는 백운두 선장을 지명수배하기도 했어요

 

그 당시, 사법당국에서는 백선장이 살아있을 확률이 98%라고 단정짓기도 하였죠

 

이로 인하여, 백선장 가족은 가슴에 대못이 박히는 고통 속에서 죄인처럼 살아야 했어요

 

허나, 백선장은 사고 5일만에 침몰 선박 2층 조타실 뒤편 통신실 내부에서 사망한채로 발견되었죠...

 

 





 

 

 

 

 

사고 순간에도 선장실에 있었던 백선장은 황급하게 조타실 뒤 통신실로 뛰어 들어가서,

순식간에 휩쓸려 들어온 물살에 출입문이 막혀서 탈출을 못하고 희생된거였죠

 

해경에 구조 요청을 하려고 통신실로 뛰어든 백선장은 위급 상황 속에서도 마지막까지 승객 안전을 지키기 위하여

숭고한 죽음을 택하게 된 것이죠

 

서해훼리호는 출항 당시에 북서풍이 초당 10~14m, 파고 2~3m로 해상 기상이 좋지 않은 상황이었다고 해요

 

폭풍주의보 등 기상특보가 내려지진 않았으나, 여객선이 출항하기엔 악천후였다고~

 

백선장은 결국, 높은 파도로 인하여 운항이 어렵게 되자, 무리한 운항보단 회항을 결정하였고,

선수를 돌리려고 하다가 사고를 맞게 되었죠

 

갑작스런 사고에 당황스러움과 공포가 밀려왔겠지만, 그래도 선장으로서 자세, 의무, 책임을 저버리진 않았어요

 

서해훼리호 참사가 어느새 21년이나 되었으나,

사망자들 넋, 선장의 순고한 정신을 기리는 추모제는 해마다 위도 앞바다에서 열리고 있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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